진지한 자리에는 왜 ‘-도록 하겠습니다’가 따라붙을까
TV에서 사회자가 이렇게 말할 때 꼴 보기 싫다. 첫 번째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는 식인데 ‘시상하겠습니다’, ‘보겠습니다’, ‘발표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될 일을 왜 굳이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잡아 늘이는지 모르겠다. 연말 시상식을 보면 너 나 할 것 없이 ‘……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천편일률적인 진행 멘트가 철철 넘쳐흐른다. 뭘 그렇게 하도록 하고 싶을까. 그들은 이런 문장에 대해 의문을 가져본 적 없을까? 남들이 많이 하니까 맞으려니 하는 식으로 생각 없는 게 꼴 보기 싫다.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 2020) 독자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도록’을 자신에게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즉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등과 같은 표현이다. ‘~도록’은 “매일 점검하도록 지시했다”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었다” 등처럼 ‘~게끔’과 비슷한 뜻으로 주로 쓰인다. 그렇다면 왜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식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표현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가 더욱 공손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배상복, 〈[우리말 바루기] ‘~도록’을 자신에게 쓸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23-03-06, 2026-05-30 확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486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44864 ) 공식적인 행사장이나 인터뷰, 기자회견 등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이 있다. “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을 줄 때도, 사과를 할 때도, 건의를 할 때도, 온갖 상황에서 “하겠습니다”라고 바로 말하는 대신 “하도록”이라는 쿠션을 하나 집어넣는 것이 공식 석상의 예의나 관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선경은 천편일률적인 이 멘트를 의문 없이 남들이 많이 하니까 생각 없이 쓰는 표현 같다면서 거부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문장을 길게 늘어뜨릴수록 공손함을 듬뿍 표현할 수 있는 불문율이라도 있냐고 꼬집기도 했다. 배상복은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더 정중하고 공손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도 그 추측의 이유를 찾지는 못했다. 우선 -도록의 축자적인 의미부터 탐색해 보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록5 「참고 어휘」 -게끔 -게끔 「어미」 1 ((동사 어간이나 일부 형용사 어간 또는 어미 ‘-으시-’ 뒤에 붙어)) 앞의 내용이 뒤에서 가리키는 사태의 목적이나 결과, 방식, 정도 따위가 됨을 나타내는 연결 어미. 뒤에 ‘은’, ‘도’, ‘까지’ 따위의 보조사가 올 수 있다. 나무가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었다. 손님이 편히 주무시도록 조용히 하여야 한다. 아이들이 길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한다. 2 ((동사 어간 뒤에 바로 붙어)) 해라할 자리에 쓰여, 지시나 명령의 뜻을 나타내는 종결 어미. 해산했다가 열두 시까지 이 자리에 다시 모이도록. “하도록 하겠습니다”의 -도록은 이 중에서 1에 해당한다. 즉, “-도록 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앞의 내용이 화자가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행동의 목적이나 결과, 방식, 정도가 됨을 나타낸다. 이제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를 예로 들어 보자. 축자적으로는 화자가 시상 자체를 곧장 하겠다는 말이라기보다, ‘시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말에 가깝다. 물론 실제 행사장에서 사회자가 언제나 직접 상을 주는 것은 아니므로, 이 표현이 절차 진행자의 말로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들릴 여지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표현의 쓰임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자가 직접 상을 건넬 때도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처럼 화자 자신이 바로 수행하는 행위에도 같은 형식이 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표현의 핵심은 실제 행위가 간접적인지 아닌지에 있지 않다. 직접 하는 행위조차 직접 말하지 않고,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형식으로 우회한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화자는 “그 일을 이루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위 주체성을 낮춘다. 이 점에서 유선경이 쓸데없는 군더더기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직관은 이 표현이 실제로 더 공손하게 느껴진다는 쪽으로도 끌린다. 왜 그럴까? 유선경은 길게 늘어뜨릴수록 공손하다는 거냐면서 꼬집었지만, 그것이 사실의 일면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길게 늘어뜨리는 것이 곧 공손성을 낳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직접성을 낮추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이다. 대화란 단순히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다. 대화가 성립하려면 화자와 청자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언어학자 허버트 폴 그라이스는 이를 협조의 원리라고 불렀고, 그 하위 원리 가운데 하나로 양태의 격률을 제시했다. 양태의 격률은 모호하거나 중의적인 표현을 피하고, 되도록 간결하고 질서 있게 말하라는 요구다. 이 기준에서 보면 “-도록 하겠습니다”는 분명 비효율적이다.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될 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 겹 돌려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양태의 격률, 그중에서도 간결성과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유선경이 이 표현을 군더더기라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효율만이 대화의 전부라면, 공손한 말이란 처음부터 군더더기일 것이다. 대화는 협조만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대화는 언제나 관계를 조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상대의 체면을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행위가 지나치게 강압적이거나 독단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조절한다. 이 지점에서 공손성의 문제가 등장한다. 언어학자 제프리 리치의 공손성 원리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가 서로의 부담과 이익을 조정한다는 점이다. 공손한 말은 상대에게 돌아갈 부담을 줄이고, 화자 자신에게 돌아갈 이익이나 자기 과시를 낮추는 방향으로 조직된다. 페넬로페 브라운과 스티븐 레빈슨도 체면 개념을 중심으로 공손 전략을 설명했다. 사람에게는 방해받거나 구속받지 않으려는 소극적 체면과, 인정받고 존중받으려는 적극적 체면이 있다. 부탁, 지시, 사과, 약속, 발표처럼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건드리는 발화는 이런 체면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화자는 여러 방식으로 직접성을 낮춘다. 말의 형식이 나를 덜 드러낼수록, 나의 행위가 상대의 체면을 덜 건드리기 때문이다. “-도록 하겠습니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청자에게 실제 결정권을 넘겨주는 말은 아니다. “시상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청중이 시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직접적 행위 선언을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하겠습니다”라는 형식으로 우회시킨다. 화자는 자신을 행위의 전면에 세우기보다, 그 일이 성립되도록 조정하는 사람처럼 제시한다. 이 우회가 직접성을 낮추고, 바로 그 때문에 공식 석상에서 더 공손한 말처럼 들린다. 그렇다고 간접적으로 말할수록 언제나 더 공손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약속에서는 명령이나 부탁과 다른 원리가 작동한다. 명령은 청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행위이므로 간접적으로 표현할수록 청자의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약속은 화자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고 스스로 부담을 지는 행위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직접적으로 말할수록 화자의 책임이 분명해지고, 청자에게 돌아갈 이익이나 안심도 커진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무조건 직접성을 낮춰야 한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잘못을 지적받은 뒤 “고치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 표현은 책임 있는 약속을 해야 할 순간에도 자신의 행위를 한 걸음 물려 말한다. “제가 고치겠습니다”가 아니라 “고쳐지도록 하겠습니다”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말은 공손하다기보다 책임을 흐리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널리 쓰이는 관용적 표현이라고는 해도, 한국 사회에는 진정성 있는 사과가 부족하다는 불신을 조금씩 키우는 데 보탬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선경의 조언은 이런 언어의 발화 맥락, 학문적으로 말하면 화용론의 문제를 간과한 틀린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글쓰기에서는 명료한 표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이강룡은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에서 “사랑합니다, 고객님”, “어쨌든 미리 감사합니다”, “깨끗이 사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은 표현을 나쁜 문장으로 들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일어난 것처럼 넘겨짚기 때문에 문장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표현들도 모두 공손성 전략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고객을 긍정적으로 대우하겠다는 의례적 신호이고, “어쨌든 미리 감사합니다”는 부탁을 감사 형식으로 감싸는 표현이며, “깨끗이 사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는 지시를 감사의 형식으로 바꾼 표현이다. 모두 상대의 체면을 직접 건드리지 않으려는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공손성 전략은 언제나 성공하지 않는다. 아직 하지 않은 일에 대해 먼저 감사하면, 상대는 배려를 받는 것이 아니라 거절할 길을 상대가 막아버렸다고 느낄 수 있다. “깨끗이 사용하십시오”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깨끗이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압박이 더 또렷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공손한 형식이 오히려 숨은 강요로 읽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말과 글은 다르다. 말에서는 억양, 표정, 몸짓, 즉각적인 반응이 발화를 보완한다. 부탁을 간접적으로 하더라도 말투와 태도에 따라 상대는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글은 한 번 글쓴이의 손을 떠나면 혼자 남는다. 글에는 억양도 표정도 없고, 독자의 반응을 보며 즉시 고칠 수도 없다. 그래서 글에서 지나치게 우회적인 공손성은 배려보다 계산된 압박처럼 보이기 쉽다. “어쨌든 미리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 감사가 아니라 거절하지 말라는 요구처럼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선경과 이강룡이 경고하는 바는 이 점에서 조우한다. 공손성과 체면을 배려한 표현도 글에서는 과공비례가 될 수 있다. 특히 글쓰기에서는 명확성과 정직성이 더 중요해질 때가 많다. 책을 일부러 골라 읽는 독자는 이미 어느 정도 협조적인 독자다. 그런 독자에게까지 말끝마다 완충 장치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돌려 말하지 않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더 큰 예의일 수 있다. “-도록 하겠습니다”는 무의미한 군더더기가 아니라 간접적인 말하기를 활용한 공손성 전략이다. 일상적인 말하기에서 오류나 군더더기처럼 보이는 것들에는 이처럼 상대를 위한 마음씨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공손성은 언제나 간접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떤 자리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이 더 책임 있고, 더 정직하며, 그래서 더 공손하다. 말하기나 글쓰기에서나 기계적인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참된 공손함은 상황에 맞게, 상대에 맞게,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말하고 쓰는 데서 나온다. 참고 자료 《어른의 어휘력》(유선경, 2020) 일상에서 습관처럼 쓰이는 표현들을 꼼꼼히 따져 더 정확하고 생생한 말을 찾도록 이끄는 책이다. 이 글에서 인용한 "-도록 하겠습니다" 비판이 이 책에 실려 있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이강룡, 2014) 제목에 "번역자를 위한"이 들어가지만 초점은 우리말이다. 번역을 잘 하려면 한국어로 더 명료하고 엄밀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한국어 글쓰기에서 흔히 저지르는 오류들을 꼼꼼히 짚는다. 이 글에서 인용한 "어쨌든 미리 감사합니다" 등의 사례가 이 책에 나온다. 《소통의 화용론》(이성범, 2019) 앞의 두 책이 일반 독자를 위한 글쓰기 안내서라면, 이 책은 대학 교재에 가까운 학술서다. 이 글에서 다룬 그라이스의 협조의 원리, 리치의 공손성 원리, 브라운과 레빈슨의 체면 이론의 이론적 토대를 이 책에서 얻었다. 명료한 말이 왜 중요한지, 그럼에도 일상에서 왜 돌려 말하는지를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우리말 바루기] ‘~도록’을 자신에게 쓸 수 있을까?〉(배상복, 2023-03-06) 이 글의 화두인 ‘~도록’의 의미와 용례를 다루는 중앙일보 기사로, 공손성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그와 통하는 정중한 표현 의도나 일본어의 영향 등 다양한 설을 소개한다. 출처: https://www.fmkorea.com/best/9894252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