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공산 전투가 한반도에 남긴 영향력.gif
공산 전투의 여라연합군 지휘관은 고려 선발대: 강공훤, 손행, 연주 고려 본대: 왕건, 신숭겸, 김락, 전이갑, 전의갑, 전락, 호의, 김철 신라 호족지원군: 황보능장. 선발대는 경북 영주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로, 강공훤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1만 병력을 규합하여 참전했고 본대는 개성의 고려 중앙군으로, 왕건의 지휘 아래 직속 정예기병 5천과 7명의 A급 장수들이 참전함. 신라 측 지원군은 경북 영천의 호족 황보능장의 군대였음. 이렇게 모인 1티어 장수들과 병력들이 매복, 기습, 포위섬멸 등 견훤의 신들린 전략에 싸먹혀 전멸했고 고위 지휘관들도 대부분 전사함. 자세한 전투 내용은 이 글 참고 https://m.fmkorea.com/6831001696 전투 중반에 이탈하여 퇴각한 두 부대는 손행이 전사했지만 강공훤과 연주, 그리고 신라 측 황보능장도 살아남음. 반면 마지막 교전에서 후백제군에 포위섬멸당한 고려 본대는 5천의 병력 중 겨우 70기 제외 4930기가 전멸했으며 왕건을 제외한 지휘관 7인 모두 전사함. 왕건은 신숭겸의 묘책으로 겨우 탈출해 2달 가까이 후백제군의 추격을 받다 겨우 개성으로 돌아갔으며 이후 최응에게 하루종일 두려움과 당혹감을 느낀다며 고민상담한걸 통해 PTSD가 도진 모습을 보여줌. 후백제는 서라벌 강습과 이어진 공산 전투를 완벽히 수행하여 신라를 반쯤 속국화하는 데 성공했고 대야성과 강주를 고려 본토와 단절시켰으며 경북 서부에서 고려의 영향력을 일거에 소멸시켜버림. 또한 공산 전투를 기점으로 후백제가 고려를 줘패기 시작함. 왕건이 겨우 개성까지 기어간 뒤 견훤과 한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키배를 뜨기도 했음. 지금까지 서술한 것들보다도 훨씬 중요한 나비효과가 있으니 바로 유금필이 대백제 전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 유금필은 본래 주로 북방전선을 책임지며 오랑캐들을 때려잡고 그들로 이뤄진 자신만의 경기병 부대 제번경기를 육성하고 있었는데 공산에서 A급 지휘관과 정예병력이 몰살당하며 유례없는 국가 존속의 위기가 도래하자 유금필이 대백제 전선의 총사령관 역할로 나섰고 공산 전투 이듬해부터 수많은 후백제군의 골통을 깨부수기 시작함. 출처: https://www.fmkorea.com/best/9901289483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65dd903a-ec1b-42cc-baf2-bc570971c638.webp Video: https://d.seouldrip.com/f/5a3c_b88cecb5-2e0a-41c5-acba-74e25f9db8b1.mp4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29a74d6e-057a-4ae9-a68c-1b40f02b1f23.webp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3f554a91-8e2f-4e3e-9d55-0b968fb605ab.webp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f3f46822-763e-4c9b-b01e-61b87230aed5.webp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919dd014-d459-4f50-925e-3dceee97124f.webp Image: https://d.seouldrip.com/f/5a3c_1070741d-6304-4778-a290-c2ab560868ad.webp Video: https://d.seouldrip.com/f/5a3c_b88cecb5-2e0a-41c5-acba-74e25f9db8b1.mp4